교민 말말말/독자투고
  • 강남 엄마의 슈퍼갑질 봉사
  • 작성자: pmj70 조회: 7829 등록일: 201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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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학기 다 끝났는데 누가 그런 일을 하냐?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이 없다는 동생의 말,

    그럼 뭐야, 난 또 막차탄 거야? ㅎㅎ

     

    지난 봄, 한 줄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딸아이가 반부반장이 되었으니 만나서 회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뭐야, 이 녀석은 고3 이면 공부나 하지...

    그런 마음에도 자식이 학교에서 무슨 자리를 하나 맡은 것이 조금 대견하기도 했다.

    오랜 만에 회의라는 공식적인 모임에 나가는 나의 마음은 어럽게 구한 직장에 첫출근하는 마음과도 같았다.

     

    " 학교 회장님이시고, 여기 부회장님, 그리고 이 분은 반장 어머님,...그리고 이분은 ??"

    " 네, 부반장 엄마에요. 잘 부탁드려요."

    " 아마 애들이 고3이니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거에요."

    " 네. ㅜㅜ"

     암, 그래야지,  그렇고말고... 시간도 없는데 이제 와서 부반장하겠다고 나선 이 놈을 그냥...

    또다시 딸의 칠칠치 못한 행동에 원망의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가끔 반장 어머님께 공지 사항을 전해 듣는 정도의 일들이 지나갔다.

     

    그러던 지난 여름,

    아이들이 수험 공부에 조금씩 지쳐갈 때 쯤 입시 막바지 공부를 위해 토요일에도 나와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 의견을 찬성과 반대, 다수결로 정하자는 결론이 났다.

    바보들의 의사 결정 방법이라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공부도 할 수 있는지, 참...

    그렇게  정해진 대로 아이는 토요일마다 아침 일찍 가방을 들고 학교로 갔다.

    하지만 휴일 공부가 시작되면서 바빠진 사람은 오히려 내가 됐다.

    아이들의 도시락과 간식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들에게 먹거리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는 숙제다.

    그런데 반아이들을 얼마 안 되는 반회비로 챙기고 먹이려니 남편의 쥐꼬리 월급으로 꾸리는 내 살림 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식당 선정에 들어갔다. 

    여러 식당들의 경합이 있고 ㅎㅎ비리도 조금 있고 입찰이나 경쟁을 거쳐 식당을 선정해야겠지...했던 나의생각은 사회 경험이 거의 없는 순진한 아줌마의 상상일 뿐이었다.

    일일이 도시락을 만들어서 학교까지 배달을 해 줘야 하기 때문에 남는 것도 별로 없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 식당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 좋은 사장님을 만났고 가격도 조금 깎는 행운?도 얻었다. 

    ' 그럼 그 남은 돈으로...?ㅎㅎ 간식도 좀 보낼 수 있겠네...'  여기까지가 혼자 북치고 장구친 나만의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가정식으로 하는 건가요? "

    " 조미료 넣지 않는 집도 있던데..."

    " 재료가 유기농이었으면 좋겠어요."

     

     헐, ... 국회 청문회가 이렇게 곤혹스러울까?

    ‘ 여러분,  제가 나라를,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라고 외쳤던 의원이라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여름, 나는 도시락과 간식 준비로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녔고 가끔씩 들어오는 같은 반 엄마들의 문자 메시지에 경기가 날 지경이 되었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 어쩌다 도시락을 가져다 줄 때면 군대에서 군인들이 사식이라도 받는 것처럼 즐거워하는 반아이들의 모습과 이 못난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딸아이의 해맑은? 미소에 중년의 건망증이 걸린 여자처럼 힘든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 우리 엄마는 화학 조미료 넣고도 맛있게 잘만 만드시더구만, 나 그거 먹고 잘만 컸잖아...도시락 한 끼 잘못 먹고 어떻게 되지는 않아. "

    다음 주 메뉴를 선정하고 조미료를 조금만 넣어달라는 부탁 전화를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하는 말이다.

    " 엄마, 애들이 도시락 맛이 없데...저번 주도 볶음밥이었다구ㅜㅜ"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오자 마자 하는 말이다.

     뭐 어쩌라고...

    언제나 건강과 맛, 현실과 이상에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도시락을 못 먹으니 환불을 해 달라, 이번 토요일은 약속이 있으니 날짜 변경을 해달라, ...기타 등등의 요구들이 나오고 결국은 간식에 과자와 음료수가  너무 많다는 요구를 끝으로 나의 도시락 봉사는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아이 입시 보다 어려운 봉사였던 것 같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른 아침 받은 같은 반 엄마의 짜증나는 문자 보다는 두 팔 가득 무거운 도시락 비닐 봉투 들고 갔을 때 공부하다 깜작 놀라 교실문 열어주던 맨뒷자리 남자 아이의 웃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 잘 먹겠습니다. " 

     " 감사합니다. "

     " 고생하셨어요. "

    라는 한 마디가 작고 작은 봉사의 가치를 아름답고 보람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배웠고 우리 아이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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